남산의 부장들이란 영화를 봤습니다.
결론은 강추입니다.
비록 어린 시절이었지만 그 시절을 지냈던 한 사람으로서 사실에 바탕을 둔 잘 만든 영화입니다.
1979년 10월 26일
그날 궁정동에서 몇 발의 총성이 울렸습니다.
그러나 시민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 지 몰랐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 되어 라디오의 뉴스와 호외 신문을 통해 알게되었던 것 같습니다.
저도 기억납니다.
대통령 유고라는 소식에 등교하는 버스 안에서 나라 걱정을 하던 생각이.
정말 어린 마음에 박정희 대통령이 없으면 나라가 망하는 줄 알았습니다.
영화는 1979년 10월 26일을 기점으로 40여일 전의 이야기부터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전 중앙정보부장으로 박통 밑에서 정권의 하수인 노릇을 하던 김형욱이 미국으로 망명하여 박정권의 부정을 미 청문회에서 고발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는 이른바 팽을 당한 이후에 신변의 위험을 느끼고 미국으로 망명하여 자신을 팽해버린 박정권에 칼을 겨누었습니다.
그러다 결국 프랑스에서 제거 당하는 비운을 맞게 됩니다.
이 영화에서는 그러한 상황과 맞물린 국내 정치 상황을 잘 그려주고 있습니다.
그러한 상황들을 배우들의 명품 연기를 통해서 긴박감을 가지고 몰입해서 보는 좋은 영화입니다.
| 간략 줄거리 |
10.26 사건이 있기 전 박정희 대통령의 측근 인물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과 차지철 경호실장이 있었습니다.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은 호남 비료 사장과 국회의원을 거쳐 건설부 장관을 거친 행정가였습니다.
그런 그가 부패 정권의 중심에 들어가 부패에 앞장 선 차지철과의 갈등을 빚게 됩니다.
차지철은 군 후배이지만 대통령의 신임을 업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러 원성이 자자했습니다.
그러나 그를 제지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김재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다 김형욱 사건이 터지고 차지철과 김재규는 충성심 대결을 벌이게 됩니다.
영화에서는 초반에 김재규가 김형욱을 살리려 노력하지만 실제로 어땠는 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여간 그를 살리려는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고 차지철에 의해 김형욱이 제거되면 자신의 입지가 더욱 좁아질 것을 우려한 김재규가 먼저 선수를 쳐서 김형욱을 제거합니다.
그러다 부마 사태가 일어나면서 박 정권의 위기가 옵니다.
이에 차지철은 탱크로 밀어부쳐서 진압하자고 주장합니다.
그때 차지철은 대통령에게 백만 정도 죽는다고 무슨 대수겠냐고 합니다.
대통령도 그 말에 찬성을 하고 이에 환멸을 느낀 김재규는 거사를 마음 먹게됩니다.
영화 속에서 김재규는 이미 김형욱을 통해 중앙정보부가 아닌 다른 사람을 심어 놓고 있다는 것과 언제 팽을 당할 지 모르니 조심하라는 말을 듣습니다. 결국은 자신들도 버려지는 하수인 밖에 안된다는 것이죠.
그런 차에 박통은 간신배 같은 차지철을 편애하고 정권의 부도덕성은 극을 향해 가게 됩니다. 그런 과정에서 김재규도 자연 조금씩 흔들리게 됩니다. 그런 심리적 압박감과 혼란이 잘 표현되고 있습니다.
여기에 한국의 장기 독재 상황을 좋게 보지 않는 미국의 개입이 미묘하게 그려지고 있습니다. 사실 영화에서는 표현되지 않았지만 한국의 핵 개발 문제로 미국은 박정희 대통령을 제거하기로 마음 먹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그래서 김재규를 포섭하여 거사를 치르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부분은 카더라 통신만 있을 뿐 진실에 접근할 수 있을만한 정보가 없기에 영화에서는 다루지 않은 것 같습니다.
결국 궁정동에서 회식이 있는 날 김재규는 정보부의 부하들을 포진 시키고 자신은 회식 도중 차지철과 박정희 전대통령을 차례로 살해합니다. 청와대 경호원들도 모두 중앙정보부 직원들에의해 사살됩니다.
그리고 거사 이후 김재규는 우유부단과 판단 미스로 육군본부로 가게 되고 결국 암살 주범으로 체포됩니다.
| 짧은 영화평 |
영화는 대부분 사실에 입각해서 만들어 졌습니다.
특히나 암살 당일의 궁정동에서의 장면들은 tv를 통해서 보던 그대로 입니다.
차지철을 먼저 쏘고 이어 박통의 가슴에 총을 발사합니다.
그리고 아직 살아있는 차지철에게 또 발사하나 불발이 됩니다.
이에 방을 나가서 다시 총을 받아 들고 들어와 차지철을 완전히 죽이게 됩니다.
그리고 박통의 머리에 한 발을 쏴서 상황을 종료합니다.
김형욱을 제거하는 장면도 사실에 입각했습니다.
프랑스로 유인하여 납치를 해서 시골의 공장 분쇄기에 넣어 흔적을 없애 버렸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이 긴박하게 그려지고 있습니다.
특히 김재규 역을 맡은 이병헌의 연기는 역시 명불허전입니다.
2인자의 자리에서 밀려나는 초조함과 불안감, 그리고 정치 상황이 악화일로를 걷는 정권 말기 정보부장의 심리적 압박감등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차지철을 맡은 이준희 역시 체중을 25키로나 증가시키며 열연했습니다.
단순 무식한 차지철의 특성을 잘 나태내 주고 있습니다.
김형욱을 연기한 곽도원은 생전의 김형욱과 매우 닮은 싱크로율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사진에 나온 미의회 청문회에 나선 실제 김형욱과 비슷합니다.
박정희 전대통령을 연기한 이성민 역시 훌륭합니다.
오랜 기간 권좌에 앉은 독재자의 모습을 그려주고 있습니다.
516 혁명을 통해 나라를 구하겠다는 구국 일념은 사라지고 자신의 자리에서 내려오려 하지 않는 비열하고 추한 독재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 편으론 점점 외로워 지는 쓸쓸한 모습도 같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권력이란 한 번 맛을 보면 내려오기 힘든 자리라고 합니다.
그래서 정치권에 들어간 사람이 완전히 정치를 떠나는 일은 별로 없는 듯 합니다.
사건 당시 우리나라 상황이 그랬습니다.
그래서 부하들은 더욱 충성심 경쟁을 벌였고 대통령은 그들 속에서마저 불안감을 느낍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비밀리에 또 다른 사람들을 세우게 됩니다.
결국 서로를 믿지 못하는 독재 정권 말기의 상황이 잘 그려지고 있습니다.
| 영화 속 명대사 |
특별히 명대사로 기억 나는 건 없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의 한 마디는 기억 납니다.
누군가를 없애거나 손을 봐줄 때 박정희는 꼭 "임자 곁엔 내가 있잖아. 임자 하고 싶은 대로 해. ."하고 말하던 게 생각납니다. 그렇게 일을 시키고 문제가 불거지면 가차없이 내치는 독재자의 비열함이 그 한 마디에 모두 담겨 있습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이들이 이 말을 믿고 불법을 저지르며 충성을 바치지만 결국 팽을 당하고 마는 불쌍한 처지로 전락하고 맙니다. 권력의 속성이 그런가 봅니다. 사실 나만 믿으라는 말처럼 무책임한 말이 없습니다. 자기만 믿으라고 말하지만 막상 일이 터지면 나몰라라 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그럼에도 그 말을 믿고 싶은 인간의 연약함으로 인해 권력자들은 그 자리를 지키나 봅니다.
| 개인적 감상 |
김재규는 재판을 받을 때 거사를 일으킨 이유는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를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부마사태로 불안한 정국에 차지철은 탱크로 시위대를 다 깔아 뭉개버리자고 하는 상황에서 김재규는 정말로 민주주의를 위해 일을 벌였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점점 밀려나는 자신의 위치와 차지철이란 인물로 인해 분노가 쌓이고쌓여서 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진실이야 알 수 없지만 높은 자리라는 게 그리고 인간의 허영심과 이기주의라는 게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그리고 얼마나 허망하고 쓸데없는 것인지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결국 우리는 그 쓸데 없는 것에 목숨을 걸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김형욱과 차지철 그리고 김재규와 박정희까지 모두 그 마지막은 결국 초라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날 이후 우리나라도 많이 변했습니다.
사건 이후 정권을 잡은 전두환 역시 독재자의 모습이었으나 역사의 흐름은 그들을 계속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이한열의 죽음으로 독재 정치는 사실상 끝이났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닌듯 합니다. 당시의 안보 논리에서 이제는 이념 논리로 국민을 편가르는 것 같습니다. 독재의 시대는 끝이 났으나 탐욕의 시대는 아직 끝이 나지 않았습니다.
언제 끝이 날까요? 아니 끝이 날 수 있을까요?
알 수 없지만 이런 영화들이 나온다는 자체가 끝을 향아여 가는 한 걸음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이상 남산의 부장들 영화 후기와 기억 나는 당시의 실화 이야기였습니다.
그 시대를 살았건 그렇지 않건 관람을 강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