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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프랑스의 철학자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이 한마디는 중세를 지나 근대로 나아가려는 유럽의 등을 힘차게 밀어주었습니다.

근대로 나아가려는 유럽의 지성에 그의 말이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그리고 어떤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데카르트는 1596년에서 1650년까지 살았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철학자이자 수학자 물리학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천재성은 어려서부터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는 10살 때 예수교의 한 학교에 입학했는데 그 학교의 규칙 중 하나가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병약했던 그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이 힘든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천재성을 알아본 교장의 특혜로 데카르트만 늦잠을 자도록 허용해 주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그가 어려서부터 얼마나 영특했을지 짐작이 갑니다.

 

 

 

 

그의 철학은 방법론적 회의라는 말로 유명합니다.

의심하되 더 이상 의심할 수 없을 정도까지 의심하여 더는 없을 확실성을 찾는다고 하는 것이죠.

그의 유명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이른바 "코기토 에르고 숨"이란 말이 나온 유래는 다음과 같습니다.

 

 

 

 

지금처럼 싸늘한 기운이 돌 던 어느 날 그는 난로 옆에서 사색에 잠겨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방법적 회의를 하기로 마음먹고 자기가 아는 존재하는 모든 것에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 감각적으로 아는 모든 것들을 먼저 의심했습니다.

꿈속에서 먹는 음식도 꿈에서는 실제라고 느낄 테니 눈에 보이는 모든 감각적인 것들의 존재는 확실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하나하나 그 확실성을 의심해 나갔습니다.

그래서 감각적인 물체뿐 아니라 수학적인 원리마저도 악마가 우리에게 그렇게 생각하도록 믿게 한 것일 수 있다고 의심합니다. 그렇게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며 의심하기 시작하니 자신이 아는 모든 것의 확실성이 의심되었습니다.

 

 

 

 

 

그러다 최종적으로 그는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모든 것이 다 의심스럽다 해도 여하튼 나는 지금 이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은가?

이렇게 의심하고 있는 지금의 나는 어쨌든 확실하게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꿈속에서든 실제에서든 여하간 지금 생각하고 있는 주체로서의 나는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나온 말이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였습니다.

 

이 말은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큰 영향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그는 개인적 차원에서 깨달음을 얻고 이 튼튼한 토대에서 철학을 시작하여 신 존재 증명까지 나아갔지만 그의 말의 영향력은 그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나타났습니다.

 

 

유럽은 기본적으로 기독교가 지배하는 세계였습니다.

그러나 르네상스의 부흥과 신대륙의 발견 등으로 점차 종교적 지식은 위협받고 있었습니다.

유럽의 지식인들은 점차로 신의 영역에서 벗어나고자 했습니다.

이전까지는 신의 계시와 말씀에 따라 살았고 성경은 지식의 원천이었습니다.

신의 지성이 인간에게 흘러넘친 것이 인간 지식의 근원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인간 지성의 근원은 신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가 되어 버린 것이었습니다.

 

 

 

 

내가 존재하는 것은 신이 나를 창조해서가 아니라 내가 생각하기 때문이란 이야기가 된 것이죠.

인간 존재의 이유가 신의 창조가 아니라는 말이 돼버렸습니다.

독실한 종교인이었던 데카르트의 의도와는 다르게 그의 명제는 인간이 신을 떠나는 명분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 이후 유럽은 더욱 신을 떠나가기 시작합니다.

계몽주의가 나타나 인간의 이성을 더욱 높였으며,

다윈의 이론은 생물학적으로도 인간은 신의 창조물이 아닌 것으로 확정했고,

마르크스에 의해 인간 사회의 동력은 신의 경륜이 아니라 인간의 경제활동이 되어버렸습니다.

그 이후 니체까지 가세하여 철학적으로도 완전히 신과의 결별을 선언해 버립니다.

 

 

 

 

그 사조는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을 떠난 자리에 다른 그 어떤 것도 그 자리를 대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19세기를 거쳐 지금까지 신을 떠난 인간은 방황하고 있습니다.

여러 철학 사조가 나타났지만 결국 모두가 신을 더욱 떠나기를 부추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에게 있을 때의 안식을 아직 그 어떤 사상도 인간에게 제공해 주고 있지 못합니다.

인간은 과연 선 없이도 잘 살 수 있을까요?

겉으로는 그런 듯 보이지만 글쎄요...

좀 더 두고 봐야 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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